기후자원정의센터 아크(ARC) 정신영 선임연구원
도시에서의 삶은 매끄럽다. 어두우면 스위치 하나로 전기가 켜지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깨끗한 물이 나온다. 오물은 화장실 레버를 누르는 순간 눈 앞에서 사라지고 쓰레기는 집 바깥에 버리면 수거해 간다. 이렇게 도시의 삶이 깨끗하고 편안할 수 있는 것은 먼지와 폐기물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인근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발전소와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폐기물 처리 시설이 도시가 아닌,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와 폐기물 처리 시설의 편익은 도시인들이 누리는 반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집중적으로 환경 위험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환경 위험과 오염의 부담이 특정 지역과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것을 환경불의(environmental injustice)라고 한다. 전 세계적 공급망이 확산되면서, 환경불의 또한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가난한 나라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경우처럼 환경불의가 가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공급망의 각 단계에 숨겨져 있다. 예컨대 아시아나 남미의 생산현장에서 수입국에서 금지된 유독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폐기물을 무단 방출하는 등, 환경불의는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겨진 경우가 많다.
환경불의가 일어나는 현장 중에서도 특히 오염이 집중된 지역이나 심각하게 오염된 환경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주민들이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건강 피해와 인권침해를 겪는 장소를 희생구역(sacrifice zone)이라고 한다. 노천 광산, 제련소, 석유정제시설, 화학공장, 석탄화력발전소, 석유·가스 생산시설, 제철소, 쓰레기 매립지, 유해폐기물 소각시설 등 가장 오염도가 높고 위험한 시설들이 희생구역이 되고 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빈곤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로 다른 지역을 위해 건강한 삶을 ‘희생당하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이러한 희생구역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과 제련소를 들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중요한 원료인 니켈 수요가 급증하자,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말루쿠 지역에서는 니켈 광산과 정제련을 위한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니켈 광산과 정제련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주로 농어업에 의존하여 살아가던 공동체는 광산과 산업단지에서 배출하는 유해물질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숲을 깎아버리는 노천광산으로 주민들은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바다로 흘러간 광산 폐기물로 인해 주민들은 주요 생계수단이었던 어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산업단지의 정제련소를 위해 건설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먼지로 인해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더 나아가 니켈 광산과 산업단지 인근 주민들은 중금속에도 노출되어 있으며, 인근 바다에서 잡힌 생선 또한 중금속 오염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마이티어스(Mighty Earth)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년 전에 니켈 채굴이 시작된 카바에나(Kabaena) 섬 주민들의 소변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니켈과 카드뮴이 검출되었다. 주민들의 요중 니켈 농도는 미국인의 중간값보다 6배에서 30배 높았으며, 니켈 정제소 노동자들에게서 관찰되는 수준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요중 카드뮴 농도 역시 미국인 중간값의 약 5배에 달했다. 강과 인근 해역에서는 니켈, 황산염, 카드뮴, 납 농도가 안전 기준을 크게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섬 주민들의 주식인 해산물에서도 중금속 오염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개의 경우 니켈 농도가 FAO/WHO 기준의 70배를 초과했으며, 납 농도는 12배, 카드뮴은 5배, 구리 농도는 2.6배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산물을 주식으로 삼는 섬 주민들, 특히 바자우(Bajau) 공동체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독립언론 게코프로젝트(The Gecko Project)에 따르면 2020년에도 이미 대표적 니켈 산업단지가 위치한 오비(Obi) 섬 인근 바다의 니켈과 철분 농도가 인도네시아 평균치보다 높고, 주민들이 섭취하는 생선도 중금속 오염이 됐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해당 섬의 가장 큰 사업자인 하리타(Harita)는 2022년, 자체적으로 연구용역을 맡기는데, 이 연구에서도 인근에서 잡힌 생선이 납과 카드뮴 수치가 높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공개된 보고서에는 중금속 오염에 대한 내용이 삭제된 채, 생선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포함되었고, 하리타는 이 내용을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오염물질은 바다와 땅에 머무르지 않고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결국 환경불의의 최전선인 희생구역은 지도 위에 표시된 장소가 아닌, 사람들의 몸인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이 몸에 새겨진다고 말한다. 도시인들은 전기차로 매끄럽게 전환하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카바에나와 오비의 주민들의 몸에는 중금속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희생구역의 자리는 결국 광산도 제련소도 아닌, 바로 이들의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