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자원정의센터 아크(ARC) 김정도 사무국장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항공권 품귀현상
제주 기점 항공권 품귀현상으로 도민들의 육지 이동에 제약이 발생하며 불편이 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저비용항공사(LCC)로 슬롯이 배분됨에 따라, 주력 기종이 중대형기에서 중소형기로 변경되어 물리적인 좌석 수가 줄어든 게 이유로 지목된다. 여기에 고유가 부담으로 항공사들이 기존 운항 계획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문제까지 겹치면서 절대적인 항공편 수가 감소했다.
이에 항공사들이 증편을 약속하고 도민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일정 좌석을 사전에 배정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항공권 구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항공 좌석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에는 협동조합 형태의 도민 항공사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이 추진되다 좌초된 바 있고, 이후 도민에게 일정 쿼터를 배분하라는 주장이나 대형 항공사가 중대형기를 더 투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등 외부요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관광객이 급감해 좌석 확보의 필요성이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민의 이동권이 온전히 보장되려면,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언제든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 확보가 필수적이다.
항공기의 대체 수단, 여객선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가기 위한 수단이 항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운 여객 역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도민들이 해운 여객을 이용하기 꺼리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루에 운항하는 배편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육지 항만까지 다다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항만에 도착하더라도 고속버스나 KTX와 수월하게 연결되는 곳도 드물다. 그러니 배편을 이용해 당일로 육지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는 사이 해운 여객 인프라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제주-부산 항로는 2022년 12월, 제주-인천 항로는 2023년 5월, 제주-여수 항로는 2024년 12월에 각각 운항이 중단되었다. 2022년부터 매년 주요 항로가 한 곳씩 사라진 셈이다. 현재 남아 있는 여객 노선은 목포항, 완도항, 진도항, 고흥(녹동)항 정도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 KTX와 연계해 다른 지역으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는 거점 항만은 사실상 목포항뿐이다.
문제는 이 목포항을 기점으로 삼더라도 이동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이동 소요 시간만 4시간 30분 남짓인 데다, 목포행 배편이 오후 시간대에 출발하기 때문에 넉넉한 일정을 잡지 않으면 볼일을 보기 어렵다. 항공편을 이용하면 하루 만에 마칠 수 있는 일정도, 배편을 이용하면 최소 1박, 길게는 2박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이동권 제약을 푸는 해운 교통 개선 방안은 없는가?
매년 제주와 육지를 잇는 주요 항로가 끊기고 해운 교통이 후퇴하고 있었음에도, 제주도는 이렇다고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도리어 중국과 강정항을 잇는 크루즈 유치에 몰두하거나 대형 카페리, 화물선 운항에만 집중했다. 그 와중에 칭다오 항로 신설 무산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겪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물론 도정이 제2공항 추진에만 급급했기에 도민을 위한 실생활 해운 교통은 뒷순위로 밀려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제주도에서 해운 대중교통에 이토록 무관심한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다. 어떻게든 해운 여객을 활성화해 도민 이동권을 보장할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도정의 마땅한 책무였다.
그렇다면 당장 무엇이 필요할까? 도민들이 배편 이용 시 느끼는 중요한 불편 사항을 상쇄시키면 될 일이다. 크게 세 가지 과제로 요약된다. 첫째, KTX 접근성이 좋은 육지부 거점 항만 노선의 복원. 둘째, 운항 시간대 및 운항 횟수의 조정. 셋째, 여객 전용 쾌속선의 도입이다.
먼저, 고속버스나 KTX망과 연결되는 항로에 선사를 재투입해야 한다. 과거 운영되던 여수엑스포항이나 부산항 등은 대중교통 연계성이 뛰어난 곳들이다. 특히 여수엑스포항은 비교적 짧은 거리 덕에 육지 이동의 훌륭한 차선책으로 활용되었다. 이런 거점 항로를 복원해야만 비로소 항공을 대체할 경쟁력이 생긴다.
물론 해당 노선을 운영하던 선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운항을 포기했다는 뼈아픈 전제가 있다. 하지만 해운 여객이 도민의 보편적 대중교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중앙정부와 제주도가 적정 수준의 적자를 보전해 주는 손실보상을 추진해서라도 선사를 유치해야 한다. 나아가 선사를 찾기 어렵다면 제주도가 직접 여객선을 도입해 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으로 운항 시간대와 횟수의 전면 조정이다. 도민들이 육지로 나가 업무를 보려면 아침 일찍 출항하는 배편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일반 카페리로 5시간이 걸린다면 최소 오전 6시대에는 출발해야 육지에서 오전 중 이동이 가능하다. 운항 횟수 역시 현행 하루 한 차례에서 최소 2회까지 늘려야 한다. 모든 노선을 확대하기 어렵다면, 항공기 대체 수단으로서 KTX 연계가 수월한 특정 항만 하나를 지정해 ‘특별 여객 항로’를 편성하고 해당 노선에 운항 횟수를 집중하는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은 쾌속선의 도입이다. 항공과 여객선의 가장 극명한 한계는 결국 소요 시간이다. 제주공항에서 여수공항까지 비행기로 40분 남짓이지만, 제주항에서 여수엑스포항까지 카페리로는 5시간 30분이 걸린다. 8배나 차이 나는 이동 시간을 감수하며 배편을 탈 도민은 극소수다. 따라서 이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해야 한다. 목포나 여수를 2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다면 배편은 항공편의 충분한 보완 수단이 될 수 있다.
여객 중심의 쾌속선 도입으로 도민의 이동권 문제 보완할 수 있다
목포와 여수를 2시간대에 주파하는 쾌속선 도입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 국내에서 이러한 쾌속선이 운항 중이다. 호주 인캣(Incat)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포항-울릉도 노선에 투입된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그 주인공이다. 이 선박은 최고 시속 95km(50.2노트)의 압도적인 속력으로 동해를 2시간 50분 만에 주파하며, 900명 이상의 대규모 승객 수송 능력까지 검증받았다.
만약 이와 같은 동급 쾌속선을 도입한다면 목포는 약 2시간 20분대, 여수는 2시간 40분대면 닿을 수 있다. 오전 6~7시에 출항하면 KTX 환승을 통해 이른 오후에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여전히 항공편보다 조금 더 걸리겠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현재 상황에서는 훌륭한 돌파구다. 반대로 전남 등 타지에서 제주를 찾는 방문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있다. 첫째, 선박 운임이 비행기 삯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해야 도민 수용성이 확보된다. 둘째, 초기 수익성 확보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기 위해 과감한 운항 보조금 지원이나 완전 공영제 도입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이 결코 과도하다고 할 수 없다.
제2공항을 강행하거나 해저터널을 뚫겠다면서 온갖 환경파괴와 극한의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수십조 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과 비교하면 쾌속선 도입은 훨씬 합리적이다. 심각한 환경 훼손이나 지역 사회의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없으며, 막대한 토목 비용도 들지 않는다. 나아가 최근 글로벌 해운업계가 전기 선박 전환을 앞세우는 점을 고려할 때, 미래 해운 산업의 테스트베드이자 국책 R&D 시범 사업의 형태로 예산을 확보하며 추진하는 방안도 얼마든지 타진해 볼 수 있다.
이렇듯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항공편 확대에만 의존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쾌속선이 기존 카페리보다 연료 소모가 많다고 해도, 중소형 여객기 5~6대 분량인 900명 이상의 승객을 단 한 번에 수송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중교통으로서 높은 탑승률을 유지해 항공 수요를 획기적으로 분산시킨다면, 1인당 탄소 배출량을 크게 낮춰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향후 전기 선박 등 저탄소 선박으로의 전환까지 고려하여 추진한다면, 해운 여객은 항공의 보완 이동 수단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면이 바다인 섬 제주에서 정작 바다의 지속 가능한 이용 논의는 항상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렇다 보니 해양 보전과 생물다양성 정책 역시 제대로 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해상 이동권 보장이라는 실체적 과제 해결을 통해 다시금 제주의 바다로 눈을 돌리고, 수십 년간 맹목적으로 항공편에만 기대어온 고질적인 이동권 제약 문제를 이제는 담대하게 풀어내야 할 때다. 그 해답이 바로 바다에 있다.
이 글은 다른제주연구소 <주간다른제주> 112호에 기고되었습니다.